원본글 Why Does The Entertainment Industry Seek to Kill Any Innovation That's Helping It Adapt?

"모든 것은 권력과 통제에 달렸다."

최근 LA타임즈에는 Hulu와 자신의 모기업들, 즉 TV 업계와 관련된 논란들을 다룬 좋은 글이 올라왔다. Hulu가 스스로 엄청난 성공을 이루어가는 동안, TV 업계는 갑자기 그것이 자신들에게 큰 위협이 될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심지어 그들이 Hulu를 소유하고 있는데도), 그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그릇되고 근시안적인 시도를 통해 그 서비스를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다.

위의 LA타임즈의 글과, 최근 우리가 Spotify를 망가뜨리려 하고 있는 음반 업계와 Netflix(온라인 비디오 타이틀 서비스)를 망가뜨리려 하고 있는 헐리우드 스튜디오들에 관해 쓴 글을 본다면, 당신은 아마 거기에 어떤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다. 컨텐츠 산업을 변화시킬만한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할때마다, 컨텐츠 업계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도 있었을 그 서비스를 망가뜨리거나 없애버리는 시도로 응수한다는 것.

왜? 답은 간단하다. 권력과 통제에 의해 움직이던 엔터테인먼트 산업 속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이 무너져가고 있음을 깨달았고 hulu와 같은 기업들의 (사실은 그들에게 돈을 벌어다 줄) 성공담에 질겁을 하기 때문이다. 많이 다를바는 없지만,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면 이렇다.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아주 오랫동안의 지켜져온 법칙이기도 한데, 스스로 게이트키퍼가 되어야했다. 그들은 게이트키퍼가 되는 것이 그들 사업의 핵심이고 가치있는 것이라고 (어리석게도) 믿어왔다. 하지만 인터넷이라는 놀라운 것이 등장하면서 이런 그들만의 장벽은 아주 쉽게 무너져버렸다.

게이트키퍼가 되는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만약 스스로를 인에이블러(enabler)로 인식한다면, 이런 새로운 서비스들은 끝내주고 멋진, 그리고 아주 큰 기회로 다가올 것이다. 만약 스스로를 게이트키퍼로 인식한다면, 이런 새로운 서비스들은 당신의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는 주변의 길 중 하나로 다가올 것이다. 이 경우, 이런 대안들, 즉 새로운 서비스들을 차단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 이유는, 그 대안이란 것들은 (보통) 게이트키퍼와 같은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기존의 게이트키퍼들의 눈에는, 그런 서비스들이 또다른 게이트키퍼처럼 보일 수 있고, 그래서 그것들을 차단하거나 제한하고자 한다. 하지만 현실은 많이 다르다. 그 어떠한 장벽이나 장애물도 없는 세계에서, 더이상 게이트는 필요 없고, 게이트키퍼도 필요없다.

그 대신 필요한 것은, 개방된 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큐레이터(curator), 어그리게이터(aggregator), 필터(filter)와 같은 인에이블러(enabler)이다. 이것은 지금 Spotify, Hulu, 그리고 Netflix가 법적 테두리 안에서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것은 수많은 불법 사이트와 서비스들이 법적 테두리 밖에서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이상 게이트가 필요없고, 벽도 낮아졌다는 사실만큼은 변함없다. Spotify, Hulu, 그리고 Netflix는 또하나의 새로운 게이트키퍼가 아니다. 그들은 어떤 부가적인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새로운 거점을 만들어낸,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인에이블러(enabler)이다. 그들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게이트에 대한 필요성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게이트에 대한 필요성은, 영원히 사라졌다. 그것은 단지 (저작권 소유자들이 돈을 지불할 수도 있을법한) 좀더 쓸만한 서비스의 등장을 가로막고, 사용자들을 수많은 (아마 불법적인) 다른 소스들로 유인할 뿐이다.